2011년 11월 2일 수요일

집단지성을 활용한 교사커뮤니티 설계-아이디어 스케치(?)



음, 주제를 어떤 걸 해야할까 생각하다가,
이 앞의 글에서 달았던 사족을 확장시켜보려고 합니다.

교육과정이 정해져 있고, 전달해야할 내용이 꽤 고정되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도
교사간의 집단지성 커뮤니티를 설계하는 편이 흥미있어 보여서요 ^^

음. 사실 블로그에 쓰기가 좀, 많이 쑥스러울 정도로 아직은 구체화 된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일단 생각한 부분까지는 써 보겠습니다.

학기 초에 찰스 리드비터의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부터
통합교과과정 개발에 집단지성 모델을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집단지성이 제대로 구현(?)되기위한 조건들 중,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주제(라고 해야할지 목적이라고 해야할지.)여야 한다는 점과, 집단이 창의성을 가지고 탐구할만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부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통합교과과정 개발이었습니다.

어떤 통합교과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토픽(?)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공유된 멘탈 모델로 두고 각 교과 전문가인 교사들이 협력하여
새로운 교과과정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다양한 구성원이 필요하고 또 창조적인 활동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좀더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굳이 통합교과과정 개발뿐 아니라,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창의적인 방법들을 찾아볼 꺼리(?)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현장의 문제들에는 교과 외적인 것들도 많고, 개인의 관점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도 많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대게 창조형보다는 기여형이 될 가능성이 많긴 하지만, 아무튼 집단지성으로 접근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질적인 집단의 참여를 염두에 둘때, 교사들의 경우 타 교과 교사만 아니라 다른 학교급의 교사와 의견교환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해 줄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집단'의 규모는 아니지만, 실제로 한 중학교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가 각자의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관점의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에서 양쪽다 학생에 대한 통찰을 얻어가는 걸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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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학기에 듣는 학부과목 중 '교직과 교사'라는 과목이 있는데요, 여기에서 교직 사회의 특성으로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교사와 교사간의 관계가 대단히 '독립적'이라는 것입니다. 서로의 수업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고, 상호 교류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교사 집단의 전문성이 약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더라구요. 모든 교사는 먼저 교사가 된 사람들의 노하우라던지 그런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따따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하기 때문에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전문성이 낮다고 지적합니다.

아직 제대로 자세히 설계되진 않았습니다만, 아무튼 교사들이 참여하는 집단지성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면, 교사집단의 전문성 부족과 같은 꽤 큰 문제들의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교육현장에 적용-1



원래는... 집단지성과 매체와의 관계에 대해 먼저 포스팅을 하는 것이 맞겠지만,
글이 나올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다음 주제로 우선은 넘어가려고 합니다.

음... 요즈음 개인적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이,
경쟁하게 하는 교육방법과, 협력하게 하는 교육방법 중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가.
혹은 그 중 어느 것이 더 유익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집단지성의 개념에는 기본적으로 협력이라거나 지식의 공유와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이것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사실 (비록 제가 직접 다닌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이긴 하지만) 현재의 일반적인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했을 때 집단지성이 집단지성답게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해 제 입장은 좀 비관적입니다.

이번 학기 시작하면서 함께 보았던 찰스 리드비터의 책에서 집단지성이 성공적으로 적용되기 위한 원칙으로 다섯가지를 꼽고 있는데, 핵심, 기여, 공유, 협업, 창의성의 원칙입니다. 핵심은 제쳐두고라도 나머지 네 가지는 경쟁을 유도하는 현재의 공립학교 체제 내에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공립학교는, 뭐 이건 흔히 지적되는 문제이지만, 상당히 입시중심적으로, 평가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가체제가 기본적으로 상대평가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누가 얼마나 '더' 잘하고, 얼마나 '더' 못하는가를 평가하게 됩니다. 학교수업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 끝에는 '평가'라는 것이 포함되기 마련인데, 본인의 성적에 대해 관심이 없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아마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 것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해 곧 서로 돕고 시너지를 얻는다기보다도 잃거나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창의성의 원칙 역시 지켜질 수 있을런지 의문이 드는 것이, 대개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내용이 정해진 상태, 답이 나와있는 상태인데 창의적인 과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자, 이렇게 비관적으로만 끝내면 좀 아쉬울테니, 꿈같은 이야기도 조금 해보려 합니다.
학교에서 '경쟁'이라는 단어를 어디로든 좀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협력'이라는 단어를 대신 둔다면 집단지성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방문했던 이우학교나 다큐멘터리로 보았던 북유럽 쪽 학교들의 모습을 보면, 아 이런 학교에서라면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이우학교의 경우, 여기도 인가를 받은 뒤엔 상대적인 등급으로 성적을 매기긴 합니다만, 중간기말시험의 비중을 줄이고 수행평가의 비중을 높여서, 학생과 학생 간의 경쟁적인 분위기를 줄이려고 애쓰고 있더군요. 그 노력이 허사는 아니였는지 학생들 사이에는 꽤 협력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그 학교에서 우수하다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노트를 정리해 학교 홈페이지에서 공유합니다. 요약을 하는 학생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내용들을 조직화하면서 공부를 하고, 그걸 나누어 가진 학생들은 조직화 된 자료를 보고 좀 더 효율적으로 학습내용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우학교 경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동아리나 행사, 프로젝트가 많은 편인데, 이런 것들은 넓게 보면 집단지성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관적인 이야기와, 조금은 꿈같은 이야기를 한 문장에 요약하자면, 경쟁 대신 협력이 일어나는 학교라면 창의적인 과제에 대한 고민만 좀 더 이루어진다면 학교 현장에서도 집단 지성을 사용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뱀다리입니다만, 학생들 사이의 집단지성도 집단지성이지만, 교사 간에 집단지성을 끌어낼 만한 주제가 오히려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습니다만, 그 내용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교사가 알아야 할 내용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지 않은가요?!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지혜로운 대중의 조건.

이번 책의 제목은 '대중의 지혜'이다. 책 표지부터 잘난 개인보다 대중의 결정이 더 현명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선적으로 드는 의문, 과연 대중은 항상 현명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는 '지혜로운' 대중들의 예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긴 하다. 모든 대중이 그렇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어쨌든.)
투표와 선거는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는 대중의 의사결정 활동이다. (물론 압박과 세뇌가 있었다지만) 유태인 30만명을 학살하도록 히틀러를 지도자의 자리에 세운 것도 대중이다. 그것도 무려 90퍼센트 이상이 찬성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지혜로운' 대중의 조건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모든 대중이 지혜롭지는 않으나, 이러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대중의 판단이라면 잘난 엘리트 한 사람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조건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집단이 내놓을 수 있는 해법의 범위를 확장시켜주며, 문제를 기발한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다양성은 집단이 영향력이나 권위, 충성심 등에 의존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두번째 조건은 독립성이다. 어떤 집단이건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독립적이라면 집단의 지혜가 정확한 예상치를 구해 내거나 좋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집단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의 의사를 모방하는 대신 각자의 독립적인 의견을 가진다면, 누군가 실수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서로 연관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의 판단에서 생긴 오류가 집단전체를 손상시키지는 않을 수 있다.

세번째 조건은 분산화와 통합인데, 이것들은 개념이 좀 모호하다. 아무튼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는 대신, 중요한 결정은 한 사람의 지혜로운 기획자가 아니라 좁고 특수한 지식을 보유한 개인들이 한다는 것이다. 분산화는 전문화를 촉진하고, 전문화가 분산화를 유지한다. 조직의 분권화는 사람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장려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을 스스로 조정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강점이다. 다만, 시스템의 한 구석에서 발견된 가치있는 정보가 다른 구석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지가 확실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들이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게 하면서, 그것들을 집단적 형태로 종합해 내는 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2011년 9월 18일 일요일

미래 교육의 트렌드.



1. 사라지는 교실의 경계선

앞의 사회 변화에 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바이지만, 최근 첨단 기술,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실은 이미 상당히 벗어났다. 한참 전부터 방송통신대학이 있었고,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약 20여개의 사이버대학이 운영 중이다. 어디서든 개인용 기기로 강의를 듣고 학습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일방적인 교수-학습의 예이지만, 세컨드라이프와 같은 방식으로 쌍방향의 교육 역시 미래에는 보편화 될 것으로 본다.)


2. 개인별 맞춤 교육.

'학교'라는 제도가 처음 생긴 이래, 현재까지는 대부분 개인간 차이보다는, 나이나 성별, 학력 등의 일부 공통점을 기준으로 몇몇 종류의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역시 이것도 기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가 변화하면서, 같은 것을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개개인의 차이를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많이 개발 되는 추세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개인의 두뇌형태, 체질, 타고난 능력 등에 따라 학습방법이 달라지고, 학습자는 다양한 맞춤 교수법을 택하게 될 것이다.


3. 교육 연령의 다변화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 60년을 살면 오래 산 것이었다면, 현재의 인류는 평균수명 100년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육'을 받는 사람은, 20세 이전의 초중고등학생, 또는 미취학 아동, 그리고 대학생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놓고 볼때 고작 5분의 1 동안 얻은 배움들로 살아가기에는 100년이라는 시간은 지루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생 뭔가를 배우고자하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은퇴 이후, 또는 직업을 가지고 한참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장년층의 사람들도 계속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고, 이런 요구에 충족하기 위해 평생교육 분야가 꽤 크게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4. 학습자 중심 교육

과거의 교육은, 교수자가 가르치려는 내용을 완전히 알고 있고, 그것을 전달하면 학습자가 받아들이는 교수자 중심의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단순한 내용 전달은 굳이 사람이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수자의 역할은 학습자가 원하는 내용을 학습자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나 코치의 역할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5. '교육'의 개념이 달라진다.
앞의 이야기와 다소 중복되는 느낌이 있지만, '교육'이라는 말의 개념이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이미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앞으로의 교육은 상당히 다른 것에 중점을 두게 된다. 현재의 학교에서 전달되는 내용들 중에는 이미 사라졌거나 더 이상 사실이 아닌 것들이 꽤 많다. 과학 분야에서는 매일 새로운 진리가 나온다. 지식의 수명이 '5분'이라는 말까지도 들린다. 이제 학교에서는 교과서 속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선별하고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집단지성의 의미.


집단 지성의 개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일 것이다.




찰스 리드비터의 책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에서 집단지성의 예로 들었던 위키피디아가 정의하는 집단지성은 다음과 같다. 

  • 집단지성 :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되는 지적 능력에 의한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


어떤 과업이 있다고 하자.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똑똑한 한 사람이라면, 
그의 관심사에서, 전공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협력한다면,
전공 분야가 다른 두 사람은, 적어도 두가지 관심사와 관점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같은 분야의 종사자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관점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n 명의 역량이 한 가지 일에 쓰여질 수 있다면, 
그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창조되고 보완될 수 있다.

더 많은 개체들의 능력이 모일 수록, 집단의 능력은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 집단지성이 가지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모인다' 는, 집단을 이끄는 한 두명의 리더의 뜻에 따라, 왼손 오른손 처럼 집단이 힘을 합쳐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각자의 능력과 관점을 가지고 와서 협력하는 것이다.




여기까지에서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집단내 개체수가 늘어날 수록, 각 개체의 능력의 합은 커질지 모르지만,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 되어 집단의 능력이 커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개체수가 늘어날 수록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만한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종종 하게 되는 조별 과제들도 크지는 않더라도 '집단'의 활동인데, 왜 시너지가 발생하는 일은 드문 걸까? 

'집단'이 생성되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고 해서 모두 집단지성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집단으로부터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은, 시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집단이 움직여야 할 출발점을 누군가 만들어내고 그것을 공유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상당히 견고해야 하지만, 발전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 출발점을 제시하면, 집단이 모여야 한다. 처음에는 작은 집단이다. 이 작은 집단의 구성원들은 더 강력히 협력하는 특징을 가지며, 더 많이 더 오래 공통의 문제를 위해 협력한다. 
   그 다음, 작은 집단의 결과물 역시 공개 되어야 한다. 공개된 결과물에 대해 군중들이 작은 의견을 내어 놓는다. 처음의 작은 집단에 비해서는 군중 구성원 각각의 기여는 크지 않지만 '많은 관점'은 더 쉬운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다. 
   이 정도면 집단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관점도 발견되었다. 그 다음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교류하고 의사소통을 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집단지성이 힘을 가지려면, 다중이 만나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창의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류의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아니, 생길 수 밖에 없다. 한 프로젝트를 위해 모이긴 했지만 각자의 관점과 능력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다름'은 집단지성을 가능하게 하는 최대의 장점이지만, '다름'의 조율에 실패한다면 공유물은 황폐해지고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권한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집단 지성이 일어나려면, 아이디어가 관리될 수 있는 의사결정 모델이 필요하다.
  집단지성은 다중의 창의성을 가능하게 한다. 여러 개체들이 다양한 관점과 능력, 도구 등을 가지고 집단의 목적아래에서 협력할 때, 창의성이 번성할 수 있다.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사회변화의 key words.


사회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들의 keyword를 꼽아보자면, 이와 같을 것이다.
나열된 순서는 중요도와는 무관하다.

1. 정보화의 가속.
10여년 전 우리집에선 인터넷을 사용하면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사용했고, 무선 인터넷 같은 것은 영화 속에나 있는 일일 줄로 알았다.
지금은? 유선랜의 속도는 조만간 기가바이트 대로 진입할 예정이라고 하고, 거리의 사람들은 스마트 폰으로 항상 웹에 접근할 수 있다. 모 이동통신사의 광고처럼, 손안의 작은 세상을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작년 즈음부터 트렌드로 일컬어지는 것이 TGIF이다. Twitter, Google, iphone과 Facebook이 그것이다. 이 네가지 모두 정보통신 기술들의 발전과 함께 일어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할 것이고, 사회 변화의 속도를 가속하는 요인 중 한가지가 될 것이다.

2. 노령화.
사회 노령화 현상은 출산율이 감소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약 10여년 전부터 지적되어온 일이다. 그럼에도 keyword로 꼽는 것은, 최근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4세 미만 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의 수를 백분위로 나타낸 수를 노령화 지수 라고 하는데, 2009년도에 한국의  경우 이 지수가 60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10퍼센트를 넘는다.
이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긍정적인 현상으로는 평균수명의 증가, 평생교육(노인교육) 관련 산업의 성장 등을 꼽을 수 있고, 부정적인 현상으로는 총 인구대비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 복지, 보건 예산의 증가 등을 꼽을 수 있다.

3. 환경문제. 온난화,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
  환경이 오염된다, 지구가 물에 잠긴다는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젠간 그렇겠지 하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후변화의 폭이 커지고, 사계절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석유가 몇 년 내에 고갈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등,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위협은,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은 먼 미래를 걱정할 이유를 제공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투자 대비 (당장 눈에 보이는)이익만을 계산하여 효율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방식의 생산이 지속 가능한가까지 감안을 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4. 많이 아는가 < 잘 활용하는가, 창의적인가?
  이것은 1에서 언급한 정보화의 가속에 그 이유를 둘 수도 있겠다. 과거라면, 내가 어디에 있고, 얼마나 움직일 수 있고, 학력은 어느 정도고 등등 내가 속해있는 환경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혹은 알 수 있는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의 불평등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될만큼, 몇 가지 기계를 사용할 줄 알고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너무 많아서 곤란할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 보다도, 얼마나 잘 고르고,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 얼마나 창의적인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이미 있는 것을 많이 아는 것은 누구든 키보드 좀 두드리면 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여러가지를 살펴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유용한 능력으로 여겨진다.

5. 세계화의 가속.
  이것 역시 1에 의해 파생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화'라는 단어를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국가 간 시장의 경계선이 옅어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정보의 교류가 국경과 상관 없어지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각국의 문화적 특성들이 융합해 국적 없는 문화가 탄생하는 것도 세계화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는 점점 하나로 뭉쳐지고 있다. 시장의 크기는 커지고 있고, 여기서 무언가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